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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New York 2023 - 2024. 5. 26. 01:24
1. (전에도 언급했듯이) 13년전 아끼는 동생 정숙이가 유방암으로 죽었다. 영주권 받겠다고 스폰서해주는 회사에서 IT직원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영어 잘하고 싶다고 나랑 맥도날드에서 만나 토플 공부하고, 여행 많이 다니고 언젠간 글쓰겠다고 꿈에 부풀었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입원했다는 연락을 제삼자를 통해 들었다. 내가 병원에 찾아갔을땐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는 나한테 가슴이 돌처럼 딱딱할 정도로 유방암 말기라고 간호사가 설명했다. 왜 일찍 치료를 받지 않았는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미국 올 때부터 알고 있었는지, death wish가 있었는지, 보험이 없어서 그냥 참은건지.....
2. 지난 월요일, 중국인 친구 단이 왠일로 먼저 연락을 하여 맨해튼에 볼일이 있다며 나랑 점심 같이 먹고 싶단다. 수요일, 약속 전날, 문자로 식당을 같이 골랐는데, 치통이 며칠전에 시작됐단다. 얼마나 아픈지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니 (이 친구가 워낙 소극적이고 나보다도 친구가 없고 두 아이 돌보느라 고립된 생활을 하는터라 신경이 더 쓰인다) 30년전에 중국에서 신경치료 받았던 치아가 월요일부터 다시 아프기 시작했고, 자기 보험을 받는 치과가 별로 없어서 겨우 한 곳 찾았는데 예약이 2주후라서 지금은 urgent care에서 항생제랑 일반진통제받아서 먹고 있단다. 이 치과에 더 빨리 갈 수 있는지 물어봤을 때 "예약이 꽉차서 불가능하고 만약 다른 의사를 먼저 보면 자기들은 치료 안해줄거라"고 했단다. 단은 이게 "annoying"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자한테 "threatening"하는 걸로 들렸다. 다음날 아침, 목요일 약속 당일날, 단이 문자로 "치통 때문에 잠을 설쳐서 오늘 못만나겠다"고 한다.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아서 다른 치과를 찾아서 당장 치료받으라고 문자로 1시간 동안 설득하다가 실패하고;;; (고집이 무지 세다, 진통제 며칠 동안 먹으면 치통이 가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길래, 내 경험과 인터넷 정보를 얘기해줘도, 계속 5/31 예약때까지 버티겠단다) 결국 내가 단의 보험회사 웹사이트에서 다른 치과를 찾아 정보를 보내주고는 무소식. 오늘, 토요일, 다시 안부 문자를 보내면서 내가 찾은 치과에 연락했냐고 물어보니 계속 치통이 심해서 아직 연락안해봤단다;;;;;; 그러고는 30분 후에, 그 치과에 연락했더니 와서 기다리라고 했다고 지금 갈거란다. (이게 정상이지...치통 있는 환자를 2주 후에 오라고 하다니!). 휴.....정말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다. 정숙이 생각이 났다.
3. 화요일에 75세 여자 환자를 위해 통역했다. 화상전화여서 그 분이 마르고 예민한 성격이라는 것, 여의사가 아주 젊은 노랑머리 백인 여자인 게 보였다. 환자가 소화가 안되고 폐에도 문제가 있어서 여러 의사들을 보고 최근엔 응급실도 갔는데 또 무슨 폐검사를 추가로 받으라고 했는데 받기 싫다고 했다. 의사가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완전 sweet해서 이 환자의 상태를 나한테도 설명해주면서 겨우 설득해서 검사 동의를 받아냈다. (알고보니 결핵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왔다는데, 환자는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결핵은 치료가 되니까 다행) 환자는 몸 곳곳이 아픈 이유가 이민과 결혼 생활에서 오는 홧병, 스트레스인 것 같다며 미국인 남편이 나쁜 사람은 아니고,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겉으로 보기엔 행복한 부부인데, 남편이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십여마리를 자기가 다 보살피고 있고 남편이 자기가 왜 힘들어하는지 이해를 못하는게 답답하단다. 의사가 그럼 왜 헤어지지 않냐고 하니, 환자는, 알아봤는데 헤어지는 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며 부부 상담을 받아보고 싶은데 남편이 원치 않는단다. 하소연을 듣다가 의사도 나도 목이 메였다. 의사는 참 이해심과 연민이 많아서 그런 것 같은데, 나는 몇년전 향수병에 시달렸던 불행한 나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이 통화 때문에 그날 밤 악몽을 꿨다. 한국에 가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하는 걸 깨닫고 미친듯이 공항으로 향하는데 엄마와 동생이 기찻길 옆에 보이고 동생이 나한테 선물이랍시고 준다는게 엄청 큰 마네킨 상체(가볍지만 부피가 커서 짐싸기 힘든)다. 까만 수트를 입은 남자인데 얼굴은 기억이 안난다.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가기 귀찮은 게으름(시차 등 여행 피로가 두렵다, 멕시코 때문에 다른 여행을 할 의욕이 안생긴다)+엄마를 못찾아뵙는 죄책감+미국에서 하는 것들(통역, 메디컬 코딩 공부)을 놓치기 싫은 마음+고양이들을 맥스한테 맡긴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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